[전북] 간이역에서 띄운 가을 엽서
전북 군산에서 보낸 가을의 끝 자락군산에서, 철길을 걸어보고 아무도 없는 간이역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조그만 창문을 내놓은 벽과 창문을 그리워하는 담쟁이덩굴을 보았다.

올가을은 너무 쉽게 끝나버렸다. 두어 번의 비와 땅에 떨어진 몇 장의 떡갈나무 잎, 말라가는 단풍만으로 가을은 가버렸다. 올해 가을은 간편한 애인처럼, 수첩에서 이름을 ‘쓰윽’ 지우면 이별의 모든 절차가 끝나듯이, “잘 가” 하는 짧은 인사와 함께 뒤돌아서 갔다. ‘나의 가을에는 무슨 일이 있었지?’ 담배 두 개비를 피우는 동안 내 인생의 가을을 떠올려보았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내린 결론은 이랬다.
‘특이사항 없음. 무료했음.’
갑자기 쓸쓸해졌다. 서른 중반에 느끼는 쓸쓸함은 황사처럼 딱히 대책이 없다. 집에 가끔씩 자러 들르는 주위의 인간들에게 전화를 돌렸더랬다.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아. 철길이 있고 예쁜 창문을 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아.”
군산으로 가라고 했다. 비좁은 판자촌을 지나는 철길이 있고 그 철길은 밤이면 달빛을 받아 어슴푸레 빛난다고 했다. 담쟁이덩굴이 기어오르는 시멘트벽이 있고 빨간 벽에는 자전거가 기대어 있다고 했다. 비행접시처럼 외롭게 떠 있는 간이역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저녁별이 돋을 무렵 서울을 벗어났다.
담쟁이 덩굴, 빨간 벽, 벽에 기댄 자전거…
우리가 외롭고 슬프고 쓸쓸할 때, 달려가야 할 곳은 차가운 바다이거나 끝없이 흘러가는 철길 곁인지도 모른다.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은 기차 칸의 퀴퀴한 시트 냄새이거나 ‘빈 방 있음’, ‘TV 욕실 완비’, ‘깨끗함’이라고 적힌 모텔의 작은 방일지도.

군산이 그런 곳이다. 낮은 건물, 조용한 거리, 네온사인은 겨우 밤 10시인데도 다 꺼져 있다. 밤은 우물처럼 고요하다. 평화롭다.
항구 도시의 시끌벅적함과 번잡함은 찾아볼 수 없다. 언제 왔는지 모르게 조용히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 치고 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 ‘쿡’ 하고 수줍게 웃어주는 그런 사람을 닮았다.
경암동으로 향했다. 이마트 건너편에 ‘철길마을’이라불리는 곳이 있다. 참 묘한 풍경을 지닌 곳이다. 양쪽으로 판잣집이 늘어섰고, 기찻길이 비좁은 판잣집 사이를 시냇물처럼 흐른다.
한밤중, 달빛은 없고 가로등만이 철길을 비추고 있다. 철길에서 서성였다. 여행이라는 게 결국 서성대는 거, 그리고 기웃거리는 거다.
담 너머에 뭐가 있나, 하고 궁금해하는 거다. 그러면서 내 삶을 흠칫 뒤돌아보는 거다.
누군가가 철길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500m 남짓한 그 거리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아마도 술에 취해 있었나 보다. 노랫소리가 이쪽저쪽을 오갔다. 철길에 깔린 자갈을 밟는, 자박자박하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났다. 일부러 그 사람과 반대편으로 걸었다. 그가 오른쪽을 향해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갔고 그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을 향해 걸었다.
그날 밤은 낯선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어색하고 불편할 것 같았다. 괜히 인사를 하고 눈짓을 나눴다가 소주잔이라도 기울이게 되면 날을 새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푸념을 듣고 푸념을 쏟아내는 일은 서울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그건 이미 충분히 지겨워진 일이니까.
철길마을에는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햇빛이 들어온다. 햇빛은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사람들은 서너 시간 동안 머물다 가는 햇빛이 아까운 모양이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살림을 내놓는다. 고추를 내놓고 빨래를 넌다. 국화 화분도 문 앞으로 밀어놓는다. 햇빛은 잠깐 동안 살림살이를 비추다 간다. 수금원처럼 냉정하다. 햇빛은 곧 사라지지만 사람들은 햇빛을 탓하지 않는다. 탓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안다.
이 기찻길에 하루에 한 번 화물기차가 지난다. 오전 10시쯤이면 철로에 바퀴 소리가 울린다. 역무원이 열차 앞에 매달려 비켜나라고 소리를 지른다.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1970년대,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철길 옆으로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마을이 이루어졌다.
손녀를 학교에 바래다준다던 한 할머니는 떠나려고 해도 갈 곳이 없다며 이제는 이곳도 정이 들었다고 했다. 사람이 못 살 곳이 어디 있느냐고도 했다. 철길마을 사람들은 열차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고추와 화분을 내놓고 빨래를 넌다.
철길마을에 난 벽을 뜯어오고 싶었다. 예쁜 창문과 담쟁이덩굴을 가진 벽, 자전거가 기대어 있는 벽, 빨래집게가 예술 작품처럼 걸린 벽. 내 방에다 모두 걸어두고 싶었다. 철길마을의 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내 설렐 것 같아서였다. 그 벽에 난 창문을 열고 누군가가 인사를 건넬 것 같아서였고 창문을 열면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지나갈 것 같아서였다.

비행접시 혹은 간이역
임피역에 갔다. 간이역에 가고 싶었다. 숨가쁜 생활을 잠시 내려 놓고 싶었다. 기차는 떠난 지 오래.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무심한 표정으로 다음 기차는 언제 올지 모른단다. 30대 중반 이후의 삶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명료한 것은 돈과 건강. 그 외의 것은 부질없다. 스무 살 시절에는 슬픔만으로도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젠 행복만 가지고도 살아가기가 힘들다.
역은 한산했다. 역무원이 역사를 혼자 지키고 있었다. 이름이 양선재라고 했다. 눈썹이 짙고 말투가 느렸다. 임피역을 보러 일부러 왔느냐고 물었다. 그냥 지나는 길에 들렀다고 했다.
그는 임피역에서 1년 7개월을 근무했다고 했다. 임피역이 근대유형문화재로 선정됐고 내일(11월 1일)부터 무인역으로 바뀐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오늘(10월 31일)이 임피역에서 근무하는 마지막 날이라고 했다.
“내일부터 전주역으로 가요. 정들었는데, 아쉽네요.”
종이컵에 타준 커피를 들고 역 앞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사사로운 생각이 머릿속에 떠돌다 사라졌다. 남은 할부금과 밀린 세금, 읽어야 했으나 읽지 못한 책, 기억하지 못한 누군가의 생일, 잊어버린 제사, 갚지 못한 돈, 챙기지 못한 생일, 정리하지 못한 사진, 지키지 못한 약속, 점집에서 심심풀이로 보았던 내 보잘것없는 미래.
익산으로 가는 기차가 들어왔다.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문이 열리자 몇 사람이 내렸고 황급히 뛰어온 몇 사람이 탔다. 기차가 떠나가자 역은 다시 조용해졌다. 텅 빈 역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언젠가는 기차가 우리를 태우고 떠나듯 우리도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우리네 적적한 생이 위로받을 곳은 사우나도 아닌, 단란주점도 아닌, 가로등 불빛만이 외롭게 어룽대는 이런 간이역이 아닐까. 철로가 아득히 흘러가고, 구름이 지붕 위에 잠시 머물다 가고, 은행잎이 쏟아져 내리는 간이역. 우리가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잠시 떠올려볼 수 있는 그런 곳.
▒ Information
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 군산 IC로 나와 군산시내로 간다. 철길마을은 군산경찰서 주변 이마트 건너편에 있다. 경암동에서 국도 26호선, 27호선을 타고 40분 정도 가면 임피면 임피역에 닿는다.
잘 만한 곳
임피역 주변에는 숙박시설이 부족하다. 군산시청, 버스터미널 부근에 최신 시설을 갖춘 모텔이 밀집해 있다. 3만~5만원.
여행 메모
마을 사이로 난 철로는 500m 남짓이다. 오전 10시경 열차가 지나지만 다니지 않는 날도 있다. 철길마을을 돌아보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주민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다.
임피역은 1924년에 지어졌다. 지난해 11월 근대유형문화재로 등록됐다. 11월부터 무인역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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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리모아